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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0 10:05
[칼럼] "뾰족집의 안부를 묻다" 중도일보, 20180503
 글쓴이 : 홈피지기
조회 : 41  
   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80503010001081 [4]
2008년 봄, 그날도 그녀는 위태로웠다. 주변 담벼락엔 온통 철거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개발의 소리 요란한 중구 대흥동 주택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꽉 잠긴 수도꼭지, 사라져버린 계단, 잡다함을 잠시 덮어놓은 까만 천막, 담장마다 그어놓은 붉은 가위표가 덩달아 내 마음에도 그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뾰족집 그녀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뾰족집은 원뿔형 지붕 때문에 뾰족집으로 불려왔다. 예전에는 보문산에서 내려다보면 대흥동의 주거지역에서 가장 높게 보였다고 하니 그 도도함이 짐작된다. 현대식 양옥집이 생기기 전인 1920년대 일본식 가옥이다.

'다다미방'과 '도코노마(일본 건축양식)'로 구성되었지만, 세부적인 건축디자인은 일부 서양식으로 동서양의 건축이 혼합된 집이다. 뾰족집 그녀의 이력을 살펴보면 1929년 철도국장 관사로 건립된 후 2008년 등록문화재 제377호로 지정되었으며, 주거 건물로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주택 중 하나이다.

그녀의 시련은 재개발과 함께 시작되었다. 본래 자리하고 있던 대흥동 429-4번지가 재개발되면서 겨우 대흥동의 한 귀퉁이로 이전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처참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된다. 2010년 10월 재개발조합이 무단으로 벽체와 창호를 철거하고 목조 뼈대만 남겨 놓았던 것이다. 말이 좋아 이전이지 쫓겨난 처지이니 피할 수 없는 시련이었다. 그녀의 불행한 소식에 지역의 문화단체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목소리를 높여 원상회복을 요구했지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녀는 이미 반쯤 죽은 목숨이었다. 무심한 하늘은 푸르기만 하였다.

그녀의 불행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제는 그녀의 모습마저 만나기 어려워졌다. 새로 옮겨진 37-5번지는 온통 모텔과 원룸 건물들로 둘러싸여 단번에 찾아가기도 어렵다. 물어물어 찾아간다 해도 너무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에 울컥할지도 모른다. 겉만 닮았을 뿐 영혼이 떠나버린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현재 그녀는 빚쟁이가 되어버렸다. 재개발조합이 재정난으로 건설업체에 공사잔금을 미납하는 등 자금 압박을 겪으면서 뾰족집에 약 20억 상당의 근저당이 잡힌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전·복원공사가 마무리되었어도 여전히 공식적으로 준공되지 못하고 미완성인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뾰족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소유권 문제뿐만 아니라 새로 복원된 집의 방향도 달라지고, 부실한 창호와 정화조 부재 등 실제 활용할 수 없는 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뾰족집은 대흥동의 역사이다. 이렇게 하나둘 버리기 시작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10년의 세월을 건너온 그녀의 봄은 여전히 잔인한 봄이다. 뾰족집 그녀의 안부를 묻자니 괜스레 마음이 울컥한다.

박은숙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